1945년 8월 15일,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핵을 맞고 일본의 히로히토 왕은 일주일 만에 항복선언을 했죠.
전후에 일본은 한국전쟁 이후의 남한만큼이나 잿더미밖에 없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일본을 재건설 한 대표적인 6인을 알아보죠.
요시다 시게루
1878-1867
전후 일본의 재건과 국가전략 노선의 기초를 확립한 인물입니다.
1946~1947, 1948~1954 일본의 총리였습니다. 요시다는 외교관 출신으로 서구적인 마인드와 서구 사회의 지식이 뛰어났는데요. 이러한 배경은 전후 일본의 총리로서 연합국에게는 딱 성향의 총리였죠.
그의 정책은 미국의 강력한 우방이 되는 것과 경제회복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했던 말로 야비한 놈이라는 인식이 박혀있죠.
これぞ天佑!コレを足掛かりにして日本経済を立て直せる!
(이것이야말로 천우신조다! 이것(한국전쟁)을 발판으로 일본 경제를 다시 일으킬 수 있다!)
조셉 닷지 (Joseph Dodge)
1890-1964
일본의 미 군정하에서 맥아더 장군의 금융전문가로 선택된 죠셉 닷지는 디트로이트 은행의 회장이기도 했습니다.
닷지의 목표는 일본의 가파른 인플레이션을 제어하고, 환율을 조기에 설정하는 것 그리고 블랙마켓을 없애버리는 것이었죠.
하야토 이케다
1899-1965
이케다는 대장성 대신으로 재직한 후 1960~1964년까지는 총리로 재직하였습니다.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일본의 가파른 경제 성장을 이끈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죠.
기술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소득 배증 정책은 전후 일본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그가 한 개드립이 몇 가지 있다면
"망할 기업은 망해야 하고, 돈이 없으면 보리를 먹어야 한다. 빵이 없으면 고기도 먹지 말고 그냥 굶어라.“
조선 강제 병합에 대해서 그는
"조선을 병합한 이후 일본의 비행에 대해서는 나는 견문이 적어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합니다."라고 한 바가 있습니다.
더글라스 맥아더
1880-1964
1차 세계 대전때 사단장으로 출중한 능력을 보여준 맥아더는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 극동 사령관, 남서태평양 사량관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이후에는 일본점령군 총사령관이 되었죠.
그의 정책은 일본을 근대 산업 국가로 거듭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죠.
소고 신지
1884-1981
일본 철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소고 신지입니다 도쿄 신칸센을 만든 주역이죠.
1963년에 신칸센 예산과 관련한 정치적인 이슈로 사임하지만, 그의 신칸센 프로젝트는 훌륭히 그 길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아키오 모리타
1921-1999
1946년 모리타는 마나루 이부카와 함께 도쿄 텔레커뮤니케이션 엔지니어링을 설립했습니다.
1950년 그들은 첫 번째 레코드 테이프를 판매했고 1957년에는 주머니 치수의 라디오를 생산했습니다.
1958년 모리타와 이부카는 회사의 이름은 소니로 바꾸었죠.
1961년 소니는 뉴욕증시시장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 일본 기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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