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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및 문화/문화 및 역사

국방티비 토크멘터리 전쟁사 제1차 세계대전, 전쟁의 서막

by 너굴이여행 2018.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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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 4천 년 인류 역사 중 93%에 달하는 기간이 전쟁 기간문명의 발달 이면에는 언제나 전운이 감돌았다. 전쟁에서 희생된 목숨은 무료 약 364천만 명. 그리고 피로 얼룩진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과 전술 속에서 수많은 구국의 영웅들도 탄생해 왔다인류는 세계 패권의 향방을 거머쥔 그들의 지혜를 빌려왔고 아울러 역사의 전범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역사의 교훈을 깨우쳐왔다

- 토크멘터리 전쟁사 -

 


▶ 커뮤니티에서 국방TV의 토크멘터리 전쟁사가 그렇게 재미가 있다길래 하나씩 리뷰를 해보면서 역사공부, 무기관련 공부도 할 겸 리뷰를 해보고자 합니다. 패널은 사학자이자 한국역사고전 연구소장인 임용한 박사와 밀리터리 콘텐츠 전문가인 이세환 기자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전쟁의 서막


▶ 전사자 약 1000만 명, 부상자 약 2200만 명, 직 간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인구 약 15억명. 바로 1914628일 단 2발의 총성으로 1914년에서 1918년까지 일어났던 제1차 세계대전.

▶ 임용한 박사는 이 전쟁을 20세기의 시작이라고 평했습니다. "20세기가 시작될 때 인류는 두 가지를 믿었어요. 하나는 이성과 합리, 두 번째 과학기술은 인간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쟁으로 오게 되었죠.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비극의 전쟁으로 말이죠."

 


▶ 이세환 기자는 제1차 세계대전을 "인류 최초의 대량 살상전"이라고 말했습니다. "산업의 발달과 함께 무기 등과 같은 전투의 수단도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전쟁이 벌어지니까 사람이 사람 목숨이 아니게 되었죠.“

 


▶ 힘의 공백 상태에 놓여 첨예한 갈등상태에 있던 발칸반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는 육군 열병식에 참석하기 위해 사라예보를 방문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정치적으로 강하게 대립하던 범 슬라브계 세력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19세의 세르비아계 청년 프린치프가 담긴 방아쇠는 전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죠.


▶ 사라예보 황태자 부부 암살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방아쇠일 뿐이었지 그 이면에는 경제적, 정치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식민지의 개념이 19세기 이전까지 약탈의 대상이었다면, 19세기 이후에는 제화 판매 시장으로 바뀌었죠. 독일은 뒤늦게 통일을 하여 열강의 속으로 뛰어들어가 봤지만 이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이 독차지한 식민지로 그들이 들어갈 시장이 많이 없었죠.



"식민지 대신에 화학으로



▶ 식민지가 별로 없는 독일의 돌파구를 찾아준 것은 비스마르크였습니다. 화학, 기술력을 발전시켜 그들을 따라잡겠다는 것이었죠. 놀라운 사실은 1900~1930년대 노벨 화학, 물리학상 수상자의 30%가 독일 출신인 것이 이를 증명하죠. 비스마르크는 리더로서 정확한 비젼을 제시했던 것이죠.

 


▶ 뒤늦게 산업화하였지만 독일의 성장 속도는 매우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식민지는 없지만, 유럽 열강에게 본때를 보여주자는 생각이 있었죠하지만 막사 전쟁이 벌어지자 헝가리-오스트리아의 군사력은 형편없었고, 독일도 놀랐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포탄을 쏘면 탄착점을 보여주기 위해서 연막이 터지는데 연막이 색깔은 나라마다 달랐습니다연합국에서는 오스트라아 군의 붉은색 연막이 터지면 "이야! 살았다!"라고 하지만 독일군의 노란색 연막이 올라오면 "우린 죽었다."라고 했을 정도라고 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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