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차 세계대전 전투는 뭐 하나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다 최악이었던 전투였지만 사상자의 수를 떠나서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많았기 때문에 모든 전투가 최악이었다고 말해집니다. 그래도 굳이 꼽으라고 한다면 서부전선 최악의 3대 전투는 솜 전투, 이프로 전투, 파스샹달 전투입니다.
▶ 솜 전투 같은 경우에는 처음 연합군은 미리 탄막포격을 했고 병사들은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모두가 죽었을 거로 생각하고 말이죠. 하지만 적 참호에서 쏟아지는 기관총 난사에 사망자가 속출했죠. 당시 기관총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느냐면은 영국군 1개 중대가 호각 불가 나가서 전멸하는 데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일군은 그건 영국군이 걸어가는 것까지 포함한 시간이고 기관총 사격이 시작된다면 단 5분 만에 전멸시켰다고 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최악의 전투 파스샹달 전투
▶ 당시 유럽의 전술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군 전술은 '최선의 방어는 공격!' 이었고 '현대전은 물량전'이라는 생각이었죠. 기차, 탄약, 무기가 공장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당시의 지휘관들은 물량과 병사를 좁은 전투 지역에 빨리 투입하기만 한다면 이길 그것으로 생각했죠.
▶ 독일군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네요. 또한, 참호와 기관총을 선두로 한 전투는 공격보다는 방어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죠. 물량을 있는 대로 퍼부어도 승부가 나기는 커녕 엄청난 인명 피해만 부른 전쟁이 시작된 것이죠.n당시의 후방 지휘관들은 마치 게임이 War Game 같았을 거라고 말합니다. 후방에서 지도를 펴놓고 '여기에 몇십만 명' '저기에 몇십만 명' 그들에게 전사자는 단지 숫자에 불과했죠.
▶ 파스샹달 전투는 영화로도 나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얼마나 참혹했는가를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참호를 무너뜨리기 위해 쏟아부은 포탄들은 서부 전설을 마치 달 표면처럼 파놓았고, 비가 내리면 그 포탄 웅덩이들은 진흙탕 웅덩이로 변모했습니다.
▶ 악천후 속에서도 영국군 병사들은 기관총 세례를 피해 무조건 전진했지만 4개월 동안 나간 거리는 고작 8km였으며 30만 명에 달하는 병사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던 참혹한 전투였습니다. 당시의 증언에 따르면 '참호전의 실상은 지옥처럼 끔찍했다'라고 하네요.
제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쟁
▶ 참호라는 개념은 로마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지하도시처럼 건설하여 참호에 거주하며 장기적인 전투로 간 현대적인 참호전이 본격화된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죠. 당시 1차 대전의 참호 길이를 한 줄로 재면 약 4만km라고 합니다. 지구 한 바퀴 길이죠. 서부 전선에서 교착상태가 된 참호는 10겹까지 둘러쳐졌으며 지하 50m까지 파여 있는 곳도 있었고 지하 대피소, 숙소, 식당 등도 있었죠. 기관총 진지는 1선 참호, 방공호는 2~3선 참호에 있었습니다.
▶ 참호전은 포격이 그친 후 시작됩니다. 고요한 가운데 서로의 1선 참호를 빼앗기 위한 서로의 참호에서 나와 달리기 시작하죠. 하지만 진흙탕인 참호는 걷기도 달리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때때로 2선 참호에서 1선 참호를 가는 데 몇 시간이나 걸렸다고 하네요. 심지어 늪 같은 진흙 수렁에서는 익사자도 속출했습니다.
▶ 프랑스군과 독일은 참호의 모양도 달랐습니다. 프랑스군은 참호를 팔 때 제멋대로 팠지만, 독일군의 참호는 정확, 정밀한 설계를 바탕으로 지어졌죠. 사각이 없고, 계단, 지형, 곡선도 세밀하게 지어져 어두운 가운데서도 눈으로 더듬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잘 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포탄을 쏘아대도 프랑스군은 독일군보다 먼저 도착한 적이 한 번도 없었죠.
▶ 당시 독일군이 가장 강력하게 했던 훈련 중 하나가 3인 1조 훈련인데요. 이는 5분 안에 기관총을 참호 내부에 넣었다가 원상 복귀하는 훈련이었습니다. 당시의 태세로 엄청난 희생은 불가피했으며 겨우 2~3km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는 제자리걸음이 계속되었죠. 우리나라의 전쟁 같은 경우에는 고지를 점령하면 적군의 후퇴 거리가 멀지만, 당시는 평지에서 의미 없는 물량전만 계속되었습니다.
▶ 계속되는 전쟁 속에 병사들의 고통은 가중되었습니다. 진흙 수렁에서 발은 부르터서 '참호족'이라는 병에 걸려 심하면 발을 절단하기도 했죠. 그리고 각 참호의 중간에는 노 맨스 랜드라 불리는 무인지대가 있는데 여기에는 시체가 어마어마하게 쌓였있었죠. 여름에는 이 시체때에 들쥐떼가 창궐해 그 크기가 강아지만했습니다.
▶ 당시의 쥐들은 저글링 같아서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프랑스 군 같은 경우에는 잠잘 때 들쥐의 공격을 피하고자 철망을 만들어 쓰고 잤습니다. 나중에는 부상자, 산사람까지도 습격했죠. 정말 허무하고 어이없게 죽은 병사들이 많아서 총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전해집니다.
▶ 전쟁의 후반부에는 그 끔찍한 장기전에 독일군은 지칠 대로 지쳐 태업도 했는데요. 당시 사기진작 차원에서 독일 황제인 빌헬름 2세가 전장을 방문해 훈장을 나눠주면 당시 독일군 병사들은 명예로운 훈장 수여에도 시큰둥하며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히틀러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해 2급 철십자훈장을 받았는데 나중에 정권을 잡았을 때 그는 자랑스럽게 훈장을 달고 있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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